흔들릴 줄 알아야 부러지지 않는다 - 달콤북스, 김정호
'왜'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저항의 왜'이고, 다른 하나는 '수용의 왜'이다.
1. 저항의 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고 밀어내며 소리칠 때 내뱉는 '왜'이다.
부모가 '너는 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허구한 날 컴퓨터 앞에서 게임만 하냐?'고 야단칠 때, 부모는 자식이 왜 공부를 하지 않고 컴퓨터 게임만 하는지 궁금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식이 공부하지 않고 게임만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 뿐이다.
2. 수용의 왜
'왜'는 사실 의문 부사로서, 자신에게 고통이 주어졌을 때 왜 그런 고통이 주어졌는지 진지하게 원인을 숙고하는 '왜'이다.
자식이 공부하지 않고 컴퓨터 게임만 할 때, 왜 아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할 수 있어야 한다.
'수용의 왜'는 주어진 고통의 상황을 일단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때 가능한 '왜'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욕구와 선입견을 내려놓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상황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진지하게 해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당장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저항의 왜'를 내려놓고, '수용의 왜'를 마음에 품을 때 자기 자신의 고통도 줄어들고 상대방과의 갈등과 충돌도 줄어든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무르익으면 마음속에 품은 '수용의 왜'는 알을 깨고 답을 내놓을 것이다.
학생들의 행동들을 보다보면 '저항의 왜'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왜 한번 얘기할 때 안듣고 딴소리를 자꾸 하지?' '왜 청소를 안하고 매점으로 튀었다가 종례때 늦게 오지?' '왜 자꾸 지각하고 전화안받고 잠수타지?'
진심으로 궁금하다기보다는 지금의 상황을 거부하려는 나의 분노가 담겨있는 '저항의 왜'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수용의 왜'를 마음에 품고자 노력하자.
'학생들이 왜 이야기 한 것을 이해 못할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집중하게 들을 수 있게 할까'
'학생들이 왜 매점을 자꾸 갈까. 어떻게 하면 청소를 먼저 하고, 시간 맞춰 종례에 참여하게 할 수 있을까'
'지각하는 친구들은 왜 지각을 할까. 아르바이트를 늦게까지 할까? 학교 생활에 정을 붙이게 할 수 없을까'
말 그대로, '수용의 왜'를 생각하면 머리가 좀 더 차가워진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상황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진지하게 해답을 찾아보려는 감정적 시도가 일어나는 듯하다.
물론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므로, 이 모든 일들을 아직 내면화하지는 못했지만 의식적으로 연습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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